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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부정공>양벽정제명기(漾碧亭題名記)
漾碧亭題名記 夫水石風月天地間公物也然若無占取爲自家之物管領而主張之則雖以濂溪風月武夷之泉石亦終於寂寞而己必也一遇周茂叔晦庵夫子占取爲卜居之所然後濂溪武夷之名勝遂有傳于天下不期聞於人而人自得聞往往賞之登臨而樂吟弄而歸夫所謂造物者之無盡藏也而主張此物者元不曾用一錢而買則實不害爲公物亦吾先子漾碧亭之別業是也先子號三灘素有高蹈林泉之志築亭於斯甞與河西金先生玉峰白公結道義交來往亭中同遊酬唱题名于亭址前崖石面而其後鄭松江趙重峰亦甞題名矣清芬不沫偉蹟未泯故粤在壬午之夏湖西淵齋宋先生南下府之金鰲島時路聞其形勝杖履臨之而其日從遊之士實鄭金二公也嗟余晚生比年以來何幸獲遊先生之門猥承留跡之命故始謀成新題而兼修潤舊刻信乎賢人所過之地山川草木皆有精彩天其欲使名區終不爲寂寞而然歟監其役時諸宗人無不幷力而惟亮燁氏基永堂弟鍾協實尸之噫湛差在前淵翁又後前後雖殊道義相符遇若朝暮題同左右曷不欽尚然後之視今亦猶今之視昔則抑未知復有何代何人景仰先子之風臨於斯題於斯而道與德出與處正而大美且善一似乎湛淵二先生者哉亦爲之曠感而俟焉 後孫 鍾悳 謹記 양벽정제명기(漾碧亭題名記) 무릇 물과 돌 바람과 달은 하늘과 땅 사이에 공변된 물건이나 그러나 만일 점거하여 자기 집안의 물건을 만들어 관리하고 주장하지 않으면 비록 주염계(周濂溪)⑰의 풍월과 朱子의 武夷精舍 천석이라도 또한 적막할 따름일 것이다. 반드시 한번 주무숙(周茂叔)과 회암 부자를 만나 점취하여 거처를 만든 연후에 염계 무이의 명승이 마침내 천하게 전하여 사람이 들으려고 아니하여도 스스로 들려 간혹 그곳에 올라 구경하며 즐겨하 기도 하며 읊으며 돌아가기도 하니 이는 이른바 조물주의 무진장한 선물이다. 이 물건을 주장한 자. 일찍이 한 푼의 돈도 쓰지 않고 점령한 것인즉 실로 공물임에 틀림이 없으니 우리 선자의 양벽정 별업이 이것이다. 선자의 호는 삼탄인데 본래 林泉에 영원히 묻힐 뜻이 있어 이에 정자를 짓고 일찍 하서 김 선생과 옥보 백 선생으로 더불어 도의교를 맺어 정중에 왕래하며 함께 놀고 수창하며 정자 앞 낭떠러지 바위에 제명(題名)하였더니, 그 뒤에 정송강(鄭松江) 조중봉(趙重峯) 양현이 일찍이 제명하여 맑은 향기가 꺼지지 않고 거룩한 자취가 어둡지 아니한 고로 지난 임오년 여름에 호서 연재(淵齊) 송 선생이 금오도(金鰲島)를 왕래한 길에 호남승지란 말을 듣고 등림하였고 그때에 삼지 정공과 지재 김공이 수행하였다. 아! 슬프다. 만생이 중년 이래로 다행히 선생 문하에 놀아 등림한 자취들 표하여 달라는 명령을 받은 고로 새로 각명하고 또 구각을 닦고 꾸미니 참으로 어진 사람 지난 곳에 산초초목이 다 정채가 있다 하겠도다. 하늘이 명승지로 하여금 경향에 드날리고자 그런 것인가. 제명하여 각자할 때에 모든 종인이 힘썼지만 특히 양엽(亮燁) 기영(基永) 종협(鍾協)이 주장하였다. 아! 하서가 앞에 있고 연재가 뒤에 하여 전후가 비록 다르나 도의가 서로 부합되고 아침저녁으로 만난 것 같고 좌우에 함께 제명하였으니 어찌 흠상하지 아니하겠는가. 그러나 후에 사람이 지금을 보는 것이 또 지금 사람이 옛적 보는 것과 같은즉 알지 못 하겠다. 다시 어느 세상에 어느 사람이 선자의 풍운을 높이 우러러 이에 와서 두 번 제명하고 유아정대한 도덕 출처가 한결같이 하서 연재 양 선생 같은 자 있을지, 아득히 감동을 일으키며 기다리노라. 後孫 鍾悳 삼가 씀 註: ⑰주염계(周濂溪): 북송(北宋)의 대유학자(大儒學者). 자는 무숙(茂叔). 이름은 돈이(敦頤). 염계는 호. 송학의 종장(宗匠)가 되었으며 저서는 통서(通書)와 태극도설(太極圖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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